대학 재정난에 강사 수 감소 '가속화'

2020-02-03 11:13:17 게재

강사법 법제화 후 지원예산 부족 … 예산당국의 성과주의 잣대에도 반발

"[재정위기, 무너지는 사립대학②] 거리로 내몰리는 강사들···강사법 도입, 학문생태계 위협" 에서 이어짐

대학가는 예견됐던 일이라는 반응이다. 지난해 8월 정부는 시간강사법(개정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과 함께 강사 고용안정과 교육질 개선 방안을 함께 내놨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원들이 지난달 초 청와대 앞에서 강사 고용 안정을 위한 정부 재정 확대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하지만 사립대학들은 등록금 동결 장기화에 따른 재정난을 호소했다. 재정상황이 점점 열악해지고 있는데 정부가 밀어붙이기만 한다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 사립대 총장은 "돈줄을 틀어쥔 교육부에 직접 반기를 들수 있는 대학은 없다"면서도 "재정여건은 그대로인데 인건비가 늘어나니 결국 강사 임용을 줄일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립대 관계자는 "요즘 대학들이 전기료 등 공공요금 한푼이라도 줄이기 위해 상대적으로 업무가 적은 방학기간을 이용해 사실상 학교를 폐쇄하는 집중휴가제까지 도입할 정도로 재정상황이 좋지 않다"면서 "등록금 수입 감소로 교수와 직원 임금을 10년째 동결하고 있는 대학들에게 새로운 예산 부담을 지우는 자체가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교육부도 이런 상황을 고려해 시간강사 처우 예산을 확보했다. 하지만 대학들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반응이다. 2020년 교육부 예산 가운데 강사 처우개선과 관련한 예산은 모두 2127억원이다. 2학기부터 강사법이 시행됐던 지난해 한 해 예산이 1412억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규모가 충분치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나마 사립대학 몫은 610억원에 불과하다. 특히 실질적으로 강사 처우개선에 편성된 예산은 방학기간 임금과 퇴직금 등 815억원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국회 입법조사처는 '강사법 시행에 따른 쟁점과 개선과제' 보고서에서 "강사법 지원 예산 중 처우개선과 관련된 실질예산은 전체예산 가운데 일부라 지원 규모의 적정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강사법 예산이 충분히 확충되지 않으면 대학에서 학생들이 받는 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만큼 재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소규모 강의 크게 줄어 = 교육계에서는 반값등록금 정책과 강사수 감소도 상관관계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학의 책임회피보다는 재정난이 강사 수 감소를 촉발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강사법 논의가 본격화한 2010년 정부의 반값등록금 정책이 도입되면서 대학의 재정건전성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최근 12년간(2007~2018년) 사립대 운영수지를 분석한 한국교육개발원의 '고등교육 정부재정 확보방안 연구'에 따르면 4년제 사립대 운영수지는 2009년 2조7230억원에서 2010년 1조6809억원으로 떨어졌다. 2016년부터는 재정적자로 돌아섰다.

강사의 신분안정을 위한 강사법이 처음 개정된 것은 2011년 12월이다. 재정난을 호소하는 사립대학들의 반발로 강사법은 유예를 거듭하다 2019년 8월에야 시행됐다. 이 기간 4년제 일반대학, 교육대학, 산업대학, 전문대학, 기능대학, 방송통신대, 원격대학, 사이버대학, 대학원, 특수대학원 등 고등교육기관의 강사 수는 빠르게 감소했다. 고등교육기관의 강사 수는 2011년 11만2087명이었지만 2012년 10만9743명, 2013년 10만639명, 2014년에는 9만1377명, 2015년에는 8만9377명, 2016년 7만9268명, 2017년 7만6164명, 2018년 7만5329명으로 매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문제는 강사 감소가 교육의 질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강의 수가 축소되면서 학생들이 신청할 수 있는 강의가 줄어 수업권이 침해됐다는 지적이다. 또 기존 소규모 강의는 수강생 수가 많은 대규모 강의로 대체됐다. 이로 인해 토론식 수업 진행이 어려워져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의 수업이 늘었다. 이 경우 학생 수준을 반영한 맞춤형 강의는 기대하기 어렵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2학기에 20명 이하 소규모 강좌의 비율(39.9%)이 2018년 2학기(41.2%), 2017년 2학기(43.7%)에 비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51명 이상 학생이 수강하는 대규모 강좌 비율(11.6%)은 2018학 년 2학기의(11.2%)와 비교해 소폭 증가했다.

◆"재정지원 사용 자율성 달라" = 최근 대학가에서는 예산당국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부쩍 높아지고 있다. 기획재정부(기재부)의 반대로 강사 고용안정 예산이 줄어 방학 중 임금지급 기간이 2주로 줄어들자 강사들은 "강사제도 개선을 위한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등교육 공공성을 이해 못하는 정부 부처를 통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재정지원을 수반하는 각종 교육정책에 예산당국이 성과주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대학들의 불만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교육부가 고등교육의 주무부처이지만 예산권을 가진 기재부가 개입하면서 그 역할과 위상이 제한돼 교육정책의 특수성이 변질된다는 것이다. 특히 대학들은 기재부가 교육정책에 성과주의적 관점을 도입해 중장기계획 수립을 가로 막는다고 주장한다.

최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대학혁신지원사업비 운용방식 개편' 등을 요구하는 건의문을 교육부에 전달했다. 오랫동안 등록금을 올리지 못해 재정이 부족하다며 정부 지원금을 보다 자유롭게 쓰게 해달라는 요구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은 대학자율역량강화(ACE+), 산업연계교육활성화선도대학(PRIME), 대학인문역량강화(CORE), 대학특성화(CK), 여성공학인재양성(WE-UP) 등 교육부의 기존 5개사업을 통합한 것이다. 이는 대학재정지원사업의 목표설정부터 성과관리까지 전 과정을 정부가 주도해 자율성이 떨어지고 소모적인 경쟁으로 행정력 낭비가 크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이다.

교육부는 대학혁신지원사업의 가장 큰 특징으로 대학이 스스로 세운 계획에 맞춰 자율적으로 지원금을 쓰는 '일반재정지원'이 이뤄진다는 점을 꼽는다. 지원금 사용이 제한되는 목적성 사업과 달리 지원금 사용이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대학혁신지원사업에 대해 '대학의 자율 혁신'을 강조하며 이를 문재인정부 고등교육정책의 주요 성과로 여기는 분위기다.

하지만 대학들의 시각은 좀 다르다. 기재부가 성과평가를 강력히 요구하면서 대학혁신지원사업의 본질이 퇴색됐다는 주장이다. 교육부는 2020년과 2021년 대학혁신사업에 대해 연차평가를 실시해 그 결과에 따라 사업비를 차등 배분한다.

대교협은 "3년 단위의 일반재정지원사업비라고 하지만 용도가 제한됐고 세부집행계획을 평가해 사업비 삭감·재배분이 이뤄지는 등 통제가 엄격해 자율성 발휘에 한계가 있다"면서 "용도 제한을 없애고 평가를 통한 사업비 삭감·재배분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교협은 '장기간 등록금 동결과 입학금 폐지에 따른 재정결손'을 대학혁신지원사업비 운용방식을 개편해야 할 이유로 꼽았다. 사업비를 보다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재정결손을 보존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대교협 추산에 따르면 등록금 동결·인하로 2012년 이후 4년제 대학 누적 결손액은 약 9조9000억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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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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